해미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6월 한국전쟁 그 시절의 민생고를 담아봤다.

아~어찌 그날을 잊으랴!!
폐허에서 일궈낸 재건Seoul
한국(Korea)
1970년대 청개천변에 삶
뒤돌아 보고싶지안은 그 고통의 추억들
이 한장의 사진을 보라!!

저 소녀 자금쯤 40대 전후 초반의 숙냐가 됐겠지 ▲

청계천 하류 판자촌 골목 길 힘겹던 삶 ▲

한국인 최초의 노숙인 마을 청계천 뚝방 판자집▲

1970년대의 영세민의 주거환경 우리도 한번 사람답게살아보세 ▲

판자촌에 도배지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한양대학교 앞의 청게천 고층건물과 판집의 조화 ▲

한양대학교 앞에 난립한 판자집 살아남기 위한 수단 ▲

1970년대 서울 답십리의 판자집 강가에 별난 화장실 ▲

단발머리 짧은 치마에 코고무신을 신은 소녀 그래도 서울 시민이다 ▲

가마니로 벽을 삼고 집웅은 루핑을 씨우고 벽돌을 눌러 놓은 판자 집▲

청계천변 우물가에서 맨발의 딸과 엄마와의 대화속에 행복이 ▲

판지집 창가에서 저 아이들은 어떤 꿈을 키웠을꺼? ▲.

버려진 우산을 주어 재활용 우신을 만든는 여인 ▲

가마니로 벽을 삼고 농업용 비닐을 덮고 얼기설기 철조망을 두른 비니 하우스▲

미군들이 버린 곽상자로 집웅을 덮고 벽돌로 눌로 놓은 판자집▲

청계천변에 난무한 판자집 마을앞에 징검다리도 ▲

철교 교각 밑에서 무엇인가 도굴을 하고있는 노숙자의 안깐 힘▲

청계천 변에 판자집 활빈교회 잎에 외국 선교사들(한국교회)▲

판자촌에 아이들의 널이시간 무엇을 만들까?▲

거적으로 둘러쌓인 판자집 이발소 ▲

판자집 교회에서 에배보는 신도들 대부분이 요자와 어이들이다▲

파자집의 번화가 골목 길벽에 영화포스터가 보인다.▲

동대문구 전논동 패수펌푸장 부근 핀자촌 ▲
* 살기위한 발버둥 속에서 하루살이 인생을 살던 서울 사람 가운데 영세민들은 고가도로 건설로 강제로 울부짖으며 철거를 당했다.
1955년대 시발택시
찝차 엔진에다 4기통 수동기야 변속장치
최무송씨 3형제가 먼든 택시란다
드럼통으로 만든 차
한국최처의 시발택시로 유명했다.

미군들의 찝차를 개조한 ㅅㅣㅂㅏㄹ 택시▲

드럼통으로 만든 시발 택시

한국 촤초의 영업용 시발택시 ▲

1950년대 서울 욕전앞 시발택시로 주차장이 되었다.▲



1700년대 손님을 기다리는 시발 택시와 용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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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홀씨 | 2008/06/28 13:33 | 아~그날이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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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부드런 at 2017/06/01 13:20
좋은 사진들 감사합니다.

마지막 1700년대 택시라고 하셔서 크게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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