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0년전에 우리조상들은 의식주에 어려움을 딛고 살아야만 하였다.

껴야 믿음
"티끝모아 태산"
현실을 알고 격에 맞게 살라고 베웠다.
그래서 100년전에 조상들의 생활상으로 빛바랜 사진을 모아보았다.
백년전에는 연상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 들인 것은
***가문에 노동력을 채우는 일과 다산이 목적***
그래서 전래동화에 꼬마신랑이란 설화를 흥미거리로 읽을 수 있다는 것
부자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교훈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
"저축" "절약" "검소"
검소한 생활은 곧 부자의 지름 길이므로 저금부터다!
수입에서 지출을 억제하며 저축!!!
조상들의 삶속에서 깨닭고
인생을 배워라.
부유층과 빈곤층은 자신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성공하며 자멸한다는 것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
노력없는 성공은 없으며 낭비는 파멸의 길이디.
"재력은 땀을 결실"
빛바랜 사진에서 삶을 배워야 한다.

애띤 얼굴로 어울리지 않는 체질과 키질하는 며느리들은 10대초반▲

평민 노인의 여가생활은 곰벙대로 담배 피우는 것▲

훈장을 들여 앉치고 하늘천 땅지 청자문부터 배웠다.▲

독파는 항이리 장수 상업은 쌍놈만의 생업수단▲

한강물 퍼다다 마실 물을파는 물장수가 직은 불과100년전 ▲

노리개와 생풀핌을 지고 다니며 행상을 하는 사림이 방물장수▲

일용잡화를 지고 집으로 찾아가서 파는 행상이 방물장수▲

뜰악에다 물건을 꺼내 진열하고 파는 점포상인▲

100년전 서울에 명소인 장터로 소에다 물건을 실고 와서 판다 ▲

서울의 소금과 미곡상으로 농산물과 해산물 전문점포▲

대나무와 싸리나무로 만든 소쿠리장수는 여름인듯 맨발에 짚신 ▲

100년전 남대문(숭레문)근처에 성곽 밖에 주택들의 초가집들▲

양반집 마님의 나드리가는 가마와 하인들을 종놈이라 했다.▲

양반가의 아씨와 도령님들▲

노인도 새댁도 가슴을 들어 내놓은 삼베 치마저고리는 상민의 의상 ▲

곰방대를 든 상민아낙의 젖가슴은 흉이 않이다. ▲

논밭으로 참을 이고가는 동안의 농무의 아내▲

타작하고 도리깨질로 알곡 수확하는 농부 옛날 탈곡방법▲

바기지로 마시는 막걸리와 참을 먹는 시간이 농부의 행복▲

난방용 땔감으로 장작을 파는 서울의 땔감장터▲

밤에 볏짚으로 집신을 삼아 낮에는 행상으로 파는 집신장수 가족▲

무겁고 무거운 항아리 뚜껑을 지고 다니며 파는 소래기 장사꾼▲

병원이 없던 시절 한의원에서 치료하며 약을 파는 한약방▲

할머니는 질그릇을 지고 기어가고 10대 엄마는 딸과 함께 옹기장수▲

편안하게 아기에게 젖줄 시간여유도 없어 업고 수유하는 모성애▲

오막사라 초가집의 백년전에 주거공간 삶의 터전▲

권세높은 세도가의 따님들 유치원생들▲

한일 합방이후 선비들은 이런 차림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양반가로서 권새가문 자녀들은 호화생활▲

양반가 노인의 화갑연과 칠순 생일 음식이 차려진 큰상▲

가슴을 들어낸 실성한 여인과 노점상인뒤에 관을 만들 널판점포

젊은 아낙은 가슴을 모두 들어낸 삼베적삼은 여성노출의 원조▲

말의 털을 뽑이 선비들에게 의관용 갓을 만드는 장인공 갓장수▲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옷감 돌로 만든 다딤이 돌에서 다듬이질▲

이조때 궁중여인들의 화관과 화려한 당의와 노리개▲

조선에 압록강을 건너 온 천주교 선교사와 신도들의 기념사진 ▲

옛날 기생을 명기는 양반가 도령님과 고관대작이 주로 고객▲

꽃신에 모시옷과 바단 옥입고 양반님들을 기다리는 가생들▲

풍악을 울리는 재주꾼 여악사들은 선비들의 심금을 울리여자들▲

명기 기생은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팔려 온 소녀들이 가는 길▲

소를 막일 풀 꼴베러가는 머슴의 글료는 1년분 쌀400Kg▲

우물에서 물길러 온 댕기머리 소녀는 반가의 하녀인듯▲

목화 실을 뽑아 베틀로 옷감을 짜는 아낙 천이 귀한 시절▲

여자는 길삼잘하며 수 잘놓고 글을 믾이 배우는 것이 요저숙녀의 근본▲

옷감을 목화를 심어 솜을 만드는 과정 쐐기질하는 할머니▲

보리 타작을 하다가 휴식시간 꿀맛같은 잠자는 남편과 아내▲

소학교 보통학교 간이학교 일본 육군병장들이 선생질▲

양반집 아낙과 남편들의 기념사진촨영중▲

부부기념사진촬영 남편은 쌈자와 곰방대 연상의 아내는 양산▲

가족을 버리고 이국 땅에서 독립운동하는 광복군의 모습▲

기생들이 술과 몸을 팔던 100년전에 고급 누각▲

태극선을 든 할애비와 손녀 그리고 물동이를 인 며느리는 건정 고무신▲

양반 가문에 가족사진▲

점을치고 굿을 하는 무당 무수리꾼들의 미신 절대신봉시절▲

명문가 관직에 종사하는 대감댁의 가족사진 촬영▲

100년전에 춤과 소리꾼 오늘의 무용수와 여가수▲

명문가의 장례로 상여를 메고가는 상여꾼의 꼭갈모자가 이채롭다▲

청사초롱 들고 가는 것으로 보아 대가집 권세가의 경사스러운 행차같다ㅁ

노모와 아들며느리 그리고 손자손녀와 기념촬영▲

조미조약체결이후 서양의사의 안과진료와 간호원▲

100년전에 머리 장식과 비단옷으로 보아 기생을 카워내는 기방포주▲

1947년 서울 사거리에서 교통정라하는 교통경찰의 수신호▲

불과60년전에 서울에 명물 교통순경 인간신호등▲

교통신호는 춤을 추듯이 손짓과 온몸으로 전차네일 앞에서 수신호▲

차선도 신호등 그리고 횡단보도도 없는 교통정리 온 몸으로▲

손짓 몸짓 발짓으로 하는 전신 교통정리 수신호하는 순경의 검은안경▲

차를 멈추고 보행자를 건너가라는 수기신호로 보행자 통과▲

호루라가 대신 휘파람으로 교통신호 메롱은 않이다▲

소학교 교실과 책상 작은 칠판을 놓고 공부하는 학생과 여자 선생님▲

광복군은 전쟁도 못해보고 연합국의 승리로 해방을 맞은 광복군▲

무엇인가 배우고있는 조선에 아낙들▲

대동아잔쟁물자를 만들려고 강제로 만든 출자증권 보험증서▲

가솔들에게 산길 집신 한죽을 사든 양반님의 망건과 곰방대▲

조선독립을 위한 청년들 독립군 지도자들과 공작대원들▲

평민들의 전통혼레식장에 초레상에는 대나무와 소나무화분▲

하인과 나귀를 탄 양반의 나들이사진은 흑백사진을 그래픽한것▲

내선일체라며 동원된 조선 사람들의 100년전의 식민지생활▲

양반집규수 명문가 여식들의 신교육 이화학당의 졸업식▲

양반 안방마님들의 나들이 차림과 시종여아 동반외출▲

명문가 규수와 유모가 노리개를 정리하는 듯▲

소학교 어린학생과 선생님 사재지간 학교에서 기념사진촬영▲

서양 의사와 조선노인 환자가슴위에 청진기 진찰중▲

중국 상해 임시정부 여자 독립운동가 독립군 조선여군▲

이화학당 학생들의 선생실습 학교방문 어린이교육중 주먹밥 점심▲

관복군들의 국기 태극기 이상한 괘가 그려졌다.▲

대동아 전쟁물자 출자금을 거두려고 생명보홈증권을 만들어 털어갓다.▲

어린 학생들이 소풍가는 길에 전차타기위해 모여섰다.▲

구질구질한 옷차림과 때묻은 정구공이 든 매마른 가정주부의 주거생활▲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는 학동과 훈장어르신의 기념촬영▲

회감, 진갑, 칠순, 팔순, 생일찬치상 차림1치3치5치7치9치 높히▲

식민지로 황국신민의 선사문과 신사참배는 필수 쇠뇌교육▲

화류계 기생들의 의식주는 매우 화려한 생활로 어우동차림▲

무명 옥감을 홍두깨에다 말아 두들기는 아낙옆에 낭군님 술상이 이색▲

물길러가는 촌부는 삼베적삼 치마는 칠부에다 짚신신은 맨발▲

집을 짛는 톱질은 도편수 목수에 지시에 따라서 조립방식▲

우늘의 식당격인 100년전에 음식점 문앞에 망근 쓴 주인장▲

잔치 집으로 출장공연 떠나는 기생들은 꽃다발을 들고 가마꾼을 불렀다▲

새 색씨 결혼3년을 친정에서 보내고 혼수와 같이 시집을 가마타고간다.▲

시종을 거느리고 외출하는 대갓집 안방마님 나드리행차▲

목재켜는 톱질 옛날 먹제상 오늘의 목제소다▲

일본어를 배우려는 보통학교 학생들의 나이처이는 아버지와 아들격▲

양반댁 영감님 나들이 행차 길 ▲

백년전에 한국인의 의식주 맏딸은 살림밑천이라 했다.▲

소가 끄는 연자방아간 옛날 100년전 방아간▲

종로에 전자 승강장에서 별난 전차를 타고 내리는 서울 사람들▲

종로를 지나 남대문으로 다니는 전차의 전차승차권 차표▲

서울 천게천변에 빨래터▲

한강에서 빨래하는 조선여인들▲

서울 장터▲

부자와 양반댁 어린아낙 임부와 담수하는 여인의 옷매무새가 다르다.▲

목화 솜에서 무명실을 뽑아내는 소자업은 할머니의 물래질▲

대동아전쟁물자를 만들려는 의도로 각종증권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보험증권들은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휴지가 되어 버린 증권들이다.


1945년 광복 당시도 운행된 서울 시민의 교통수단이였던 전자▲

무거운 물건을 운반한 옛날 기중기▲

짐을 나르던 네바퀴 소가 끄는 우차 일명 마차라고도 한다.▲

시어미는 키질을 하고 며느리는 절구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손녀▲

아낙네들의 오손도손 오여서 참깨 떠는 일터▲

중국 상해 임시정부 광복군 사령부▲

by 민들레홀씨 | 2008/08/29 21:16 | 100년전의 우리의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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